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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요리,혁명,배신,혀,미학혁명,이원론,데카르트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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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요리는 더이상의 요리의 차원을 뛰어넘는 상식밖의 요리이다. 불의 세기에 변화를 주거나, 플레이팅을 할때의 섬세한 마무리를 하는것이나, 시즈닝을 할때 특유한 허브를 T본 스테이크에 2부위 각각 다르게 해볼려는 시도차원이 아니다. 기하학적으로 음식이라는 것을 변형시킨 것이다. 무슨 말일까? 쉽게 들어가 보자.

먹음직 스러운 음식이라는 것은 시각과 후각을 강렬히 자극하는 음식이고, 그 맛을 더 극대화 하기 위해선 최상의 식감을 한 그릇안에 있는 여러 요소들을 고루고루 배치해야 한다.

그럼 분자요리란 무엇에 대한 혁명이자 배반일까? 그것은 바로 맛에 대한 미학을 총체적으로 바꾸었다는 말로 설명하면 될것이다. 너무 접근하기 어렵다면 바나나맛 아이스크림과 바베큐맛 프링글스를 상상하면 더 쉬울 것이다. 우리는 맛에 대한 정의를 대상의 형태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태에서 정의하였다. 시각적 표현에 의존한다고 하는것이 더 보편적일수 있겠다. 시각적으로 그 본형을 인식하고, 그다음에 의식적으로 그 맛을 기억한다. 2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간주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이러한 단계를 구성할때 요구되는 것은 시각적 학습을 통한 맹렬한 훈련, 혹은 피치못할 운명으로 인하여 완성되는 맛의 통제성에 있다. 이는 전형적인 데카르트의 이원론으로 충분히 설명될수 있다.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수 있는 기준을 ‘인간 인식의 정의’로 가지게 됨으로써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가지게 된다. 이에 근거하여 다시 돌아가서 말하면, 제대로 규칙성을 만들어내는 불변성을 가지고서 살아왔다는 이야기 이다. 예를 들면 사과가 매운맛을 낸다고 하면, 인류가 대재앙에 처해있다고 할것이다. 그 이유는 규칙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기존의 답안지와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며, 1+1=2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분자요리는 바로 이러한 규칙성의 변화를 최소한의 리스크를 가진 분야인 음식에서 나타난 최신 미학의 경향이라고 볼수 있다. 시각적으로 점령당한 맛에 대한 인식을 최대한 배제시키면서, 인류에서 가장 근본적인 기하학적 구조인 세모,네모,동그라미의 단순화과정을 거친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형태적인 제한을 벗어나게 되면, 보다 더 과학적으로 맛에 접근하게 된다. 어떤 재료를 쓰면 먹음직스러울까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혀에 맛있게 반응할까의 접근방법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이는 혁명이자 동시에 기존의 전통에 자존심을 발휘하던 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물론 필자의 의견이 단순 일주일만에 일어날 현상은 절때 아니다. 더군다나 직관적으로 행동할수 없는 제 3국의 입장에 위치한 의견은 항상 주체적으로 결정짓는 자격을 가진 일류국의 결단에 수년,수십년의 대기시간이 필요하다.

분자요리는 시각적 맛의 지배를 최대한 배제시킨 음식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시킨 피조물이고, 동시에 좀더 고차원적으로 음식을 접근하게 만드는 음식물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게된 초현실적 규칙성의 발견이다. 우리가 이러한 시선을 보편적으로 가지게 될날이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떠한 방식으로 음식이 변형될지는 예측할수 있겠다. 분명 예술과 음식 사이가 될것이다. 혁명이자 배신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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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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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할까?

범죄자는 없다. 피해자만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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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Eats a Hamburger

세상이 얼마나 낭만적이었으면 이런작품이 나왔을까?

기가 차는 구나 50,60’s는 어떤 또라이들이 설쳤던가…

신사역에 가면

신사역에 가면
취직을 위한 성형
면접을 위한 성형
美를 위한 성형
자신감을 위한 성형
 당연히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모든사람들은 그냥 지나쳐간다. 세상이 미친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신사동은 미처간다’ 정말 대단한 간판광고가 어찌나 쩌렁쩌렁하게 달려있는지 승객들을 휘감아 가는것같다. 아직은 보편화 되지않은 관념들을 대수롭지 않게 걸어놓은 간판들을 보면서, 비신사동 주민인 나로써는 당황스럽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취직을 위한 성형과 면접을 위한 성형을 본 순간 성형이라는 것이 갈때까지 가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을 위해 성형을 붙잡아야 하는 현실이 도래되었다. 굳이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영화에서 보면 이러한 개념들이 많이 내포되어있는것을 알수 있다. 특히 공상과학 영화말이다. (토탈리콜이 좋은 예가 될수 있겠다)
 나는 아직 이러한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는 꼰대주의가 되는것일까?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청록파의 시인만큼이나 시대에 동떨어진 시구로 남게되는것일까? 물론 이것이 우리나라의 자랑할만한 산업이기도 하다. 성형은 동양인 특히 극동아시아계의 여성들에게 미의 정립을 해주었다. 또한 성형을 통한 미의 추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못생긴애들에게 가치를 둘 여유를 줄 시기는 향후 1세기는 더 지나야 되지 않을까 싶다. 변기를 작품으로 가져다 받친 ‘뒤샹’처럼 적절한 시기와 태도를 만나야 다다이즘적 성형이 풍만한 개념으로 재탄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와 같은 입장은 세상이 말세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 나이 드신 나이대와 이와 관련이 그나마 적은 남성들) 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항상 트렌디하게 나아간다. 우리가 항상 트렌디를 찾는 성품을 천성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 우리는 꼰대로 남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새롭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성형을 바라보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날로그화 되어가고 있다. 트렌드에 쫓아가지 않으면 아날로그가 되는것이다. LP판 처럼 그만의 투박함과 원초적 역동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서울,러브모텔,로맨스,나비,콘트리트,로망스

shadow 울창한 천연자연색을 지닌 숲속에서 바람소리를 휘날리며, 멋진 정장을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속삭일 때 우리는 서울을 생각할수 없다. 참으로 애처롭다. 난 서울에 낭만적  사랑이야기를 문학적으로도 지어낼수 있을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서울에서 할수 있는 로맨스란 비극과 둘만의 관계에서 끝낼수 없는 참혹한 현실 그리고 화려한 마천루에 인간마저 작아지게 보이게 되는 지독하게 현대화된 도시계획들 초록색을 보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고 새소리를 들으려면 휴가를 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절때 한낱 장난치자고 쓰는 글로 안 여겨졌으면 좋겠다. 또한 감성적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해석하는 이러한 구조적 접근 방식은 벤야 발터민의 사유 양식과 비슷하다. 명확하게 객관화시킨 의견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적갈색 흙을 만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색다른 감성을 만질수 있는 기회이다. 콘크리트로 뒤집힌 도시에서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되고, 남아있는것은 남루한 것이 되는 곳이 서울이다. 그러한 곳엔 항상 새로운 엔돌핀이 필요하다. 대신에 뒤쳐진 자들에게 대한, 또한 뒤쳐질 자들에게 대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목’좋은 자리에 공공벤치를 만들만한 여유는 없고 설령있다 하더라고 도심한복판이 아니다. 어색하게 지어놓은 설치미술이라는 것도 힘있는 기업의 강력한 모토를 위한 상징물로 취부된다.

생각보다 아름답게 키스할 곳이 러브모텔이라는 곳이 어찌보면 당연한 곳이다. 그런곳에서 손쉽게 서로를 공유할수 있게되는 구조가 바로 서울의 구조인 것이다. 밀실에서 나누는 환희를 겪게되는것이다. 그것은 그둘만의 비밀이 되는것이고, 모두가 적당히 상호간의 비밀로 유지되는 공식으로 현재까지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메트로폴리탄 도시의 행색을 잘 가추려면, 낡은곳에서 추억을 느끼고, 남루한 곳에서 어느 커플들의 입맞춤을 볼수 있어야한다.

참으로 의아한 곳은 서울만큼 치안이 잘되어있는 나라에서 산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린 벌써 포기한것이다. 우린 우리가 생각보다 감성적이라는 인간이란 성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어느 공간에 가두게 되고,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결국 갇힌 공간안에서 어느 한 곳에 자신을 담가버리게 되는것이다. 텔레비전, 인터넷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것보다 더 고차원적은 본인이 가진 소지품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볼수 있겠다.

글쎄다. 참으로 서울이란 곳은 낭만적인 순간조차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인도보다 더 거대하게 기획된 차도와 적당히 무럭무럭자라면 벌초를 당하는 나무들 그리고 맹렬하게 모던하게 구현된 도시생활로 인한 총천연색의 부재는 회색도시로 인정받기 참 쉬운 구조이다. 이곳에선 클래식도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고 째즈는 부르주아같이 느껴지며 팝송많이 공감대를 형성하게된다. 이미 국악은 퓨전의 형식을 빌리지 않으면 대중성과 인연이 멀어보인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칠수 있을까? 어떻게? 언제? 누가?

답은 없다. 이러한 접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낭만적일수 있다. 단지 매우 한정적으로 들추어낼수 없다는 것일뿐… 그것이 답답할뿐이다.

건달과 야쿠자를 쫓는 작가 ‘양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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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hotoyang.jimdo.com

 

거침없이 작업하시고 화끈하게 보여주신다.

SNS 그리고 촌티나는 불만

 
 조금 멍청한 애들이 공짜발언권으로 파생된 현대사회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내가 지금 언급하는 발언권이라는 것은 예전에 적당히 많이 공부하고, 책상에 오래붙어 있던 사람들이 마이크에 대고 말할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또한 다시 언급하는 여기서 말한 멍청한 애들은 남녀노소를 다 취급한다고 말할수 있다. 
 
 우리는 발언권에 대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고 있다 생각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다.  SNS는 바로 이를 공짜로 이어주게 되었는데 말이다. 이는 발언권이 ‘전면무효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많은 장점은 벌써 알고 있겠지만 이에 대한 많은 단점들은 불만으로 여기는 면이 참으로 많다. 발언권이 공짜가 되면서 부터 우리는 피치 못할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당연시 여기지 못한다. 
 
 특별한 사람만 부여받는 기회를 철수와 영희 그리고 순희와 영철이까지 가지게 되어버린 이순간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보이지않는 장의 게이트가 전면 파괴되면서 부터 이제는 정보에 어떠한 식으로 반응해야하는지가 인간이 가진 숙제가 된다. 또한 권리의 방향성도 전적으로 바뀐다. 우린 더이상 자신에게 노출되는 정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노출되는지에 대해 멍청하게 불만만을 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그들에게 그 권리를 전적으로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해야할 움직임은 개개인 별로 본인 스스로가 차단하는 방식을 쓰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미 계약은 시작되었다. 이는 댓글의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알수 있다. 더이상의 무기명 악성댓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 회사가 신상을 전부 밝히는 입장을 취소하지 않는한 우리는 이전보다는 조금더 안정된 사이버 공간을 즐길수가 있다. 빅브라더가 인간의 편이라는 점이 참으로 다행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가 인류애를 가지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개개인이 정보에 대하는 태도를 자기스스로 설정해야 하는 현실이 오게되었다. 더이상 이 게임에 참가한 이상 플랫폼에 대해 지나친 개탄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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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정신*

602654_555433904473481_777857330_n*꼰대정신* by Publicoco
시선을 과거에고정시키고, 주변의 변화에 무뚝뚝해지는자
통섭불가 이기주의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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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를 논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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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금도 낼줄 모르는 자들에게 진보냐 보수를 논하라는 너무 가혹한 이질감을

만드는것 같다. 일,이년 살것도 아닌데… 위인전을 너무 많이 봤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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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원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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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원액

이것과 물을 섞으면 아메리카노
이것과 우유를 섞으면 카페라떼
이것에 휘핑을 얹으면 꼰파냐
이것을 많이 한잔에 넣으면 도피오

그리고 이것은 제일 싸다.
단 들고다니면서 마실순 없다.
그 이름은 Espresso

파리 마레지구에서 테라스에서 담배물고, 달달한 사카린 타먹는 용액도 바로 이

커피 원액

그 이름은 Espresso! 보다 더 강렬하게 더 진하게 맛볼려는 인간이 마시고자 하는 원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냥 까나리액젓과 유사개념인 원액

마셔보세요. 사카린타서요. 하하하